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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에 대해 25. 단군설화를 믿고 '단군'을 섬기는 종교
남재선 2014-01-02 추천 0 댓글 0 조회 265
초·중·고등학교 교정에 '단군상'이 세워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교 캠퍼스에까지 퍼져 나가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기독교계가 들고일어나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를 비롯한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한국기독교 지도자 협의회,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 등 기독교 단체들은 6월 14일에 「공공 시설 내 단군상 설치를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단군상 설립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단군상'이 어떤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단군을 신앙 대상으로 섬기며 그 교훈을 교리화하여 신앙하는 종교(단군교)가 50개나 되는 이들을 통털어서 '단군계'라고 부릅니다. 이 신앙은 고조선 시대부터 전승되어 왔으며, 단군신화를 기초로 하여 단군을 국조로 모시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대표적 종단은 대종교(大倧敎)입니다. 나철(羅喆)이라는 사람이 1909년 1월 15일에 서울 종로구 제동에서 천제를 올리고 단군교로 출발했다가 1910년에 대종교라 명칭하게 되었습니다. 대종교라고 부르는 이유로는 환검 곧 대종(大倧)을 존경한다는 데서 나온 말로서, 대(大)는 환(桓)이라 하고 종(倧)은 검(儉)이라 하여 큰 임금 곧 하느님(天帝)를 의미한 명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환인(桓人)과 환웅(桓雄)과 환검(桓儉-檀君) 모두가 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며 환인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한 최고의 신이고 환웅은 홍익인간하기 위하여 태백산에 강림한 신인(神人)되는 것입니다. 환검은 환웅이가 사람되기를 기원한 곰녀와 결혼하여 나은 아들로써, 그는 땅위에 배달나라(檀國)을 세워 1천 5백 년 동안 통치하고 승천하였다고 주장하며 환검은 곧 단군으로서 고조선의 시조이며 동시에 대종교의 시조로 되어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에 눌려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유교의 세력이 너무나 강하여 맥을 추지 못하였고 겨우 민간 신앙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는데 불과하다가 한(韓) 말엽에 이르러 민족 사상이 대두되면서 중흥의 때를 만났습니다.

1904년 10월 백봉(白峯)이란 사람이 단군에게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백두산으로 갔는데 그곳의 대숭전에서 석함(石函)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안에 경전이 있었고, 백봉은 뒤에 그 경전을 제자인 두일백(杜一白)에게 주었으며 1908년

11월에 두일백은 또 다시 이 경전을 나철(羅喆)에게 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일제로부터 압박을 받아 오던 대종교는 1945년 조국의 해방과 함께 포교의 활기를 되찾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일제시대 때 민족 사상을 지키는데 희생되었다는 점이 상당한 평가를 받게 되어 단기(檀紀)의 사용과 개천절(開天節)의 국경일 지정을 얻어 낼 정도였으나 현재는 교세가 미약한 형편입니다.

그러나 대종교의 신앙 대상인 단군 한배검을 섬기는 단군전이 전국적으로 약 50개 처나 있으며 단군전 건립단체나 숭봉단체가 전국에 90군데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군마니 숭조회, 단군교, 개천교, 단군성조 수도원, 단군천조광명 도덕보본회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단군신앙은 동학(東學)의 동도교는 물론 증산교와 무속에도 널리 퍼져 있고, 특히 불교에서도 해방 후에 사찰에서 국운의 왕성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단군신위를 법당에 모시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단군상'은 신앙과 숭배의 대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신앙대상이 되고 있는 '단군'이 등장하는 단군신화를 살펴봅시다.

단군 신화는 중국의 위서와 고기 두 가지 역사책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위서에는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두고 개국하여 조선을 세웠다는 내용이 있고, 고기에는 천제 환인의 서자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고 단군이 조선을 세웠다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 신화가 우리 나라의 문헌에는 전설로서 전해 내려 오다가 고려 충렬 왕 때 중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소개됨으로써 비로소 국조로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김부식은 정사(正史)로서 「삼국사기」를 썼지만 여기에 단군설화는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비로소 단군이 국조로 등장하게 된 배경은 당시 고려는 중국의 원(元) 나라의 속국으로서 갖은 압박과 천시를 당하던 중 이에 대응하여 민족적 자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단군을 국조로 숭상하고 그의 신격과 위대함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는 우리 민족의 혼을 뺏기 위해 우리 나라 역사에서 단군설화를 삭제하였으며 해방 후 교과서에 다시 수록하고 단기를 쓰게 되었다가, 5.16 후 단군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하여 단기를 서기로 바꾸고 교과서에서 단군신화를 삭제하였습니다.

그럼 '단군상'을 세우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이것이 숙제입니다. 드러나기는 '한문화 운동연합'이 주도하며 이 단체의 총재는 '이승헌'이라는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단군상 옆에 세워진 현판의 취지문에는 단군설화를 설명하고 "평생을 민족정신 광복에 전면해 오신 한민족 운동연합 총재 일지 이승헌 님의 제안으로 뜻을 같이한 동지들이 힘을 모아 분단 반세기를 넘긴 민족의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민족사 바로 세우기의 정신을 담아 전국에 360개의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을 세운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민족 운동연합 총재라는 이승헌 씨는 '단학선원'을 이끌고 있는 사람입니다. 단학선원에서는 '단학'이라는 것을 가르치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단전호흡'이나 '기(氣)수련'을 가르치며, 최근에는 '뇌호흡'을 학습능력을 증진시킨다는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김청 / 사이비이단문제상담소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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